해외 여행

발리에서 배운 휴가의 정의

knowledge2603 2026. 2. 2. 15:23


발리에서의 13일은 내가 알던 ‘여행’의 정의를 조용히 바꿔 놓았다. 한국에서 ‘바캉스’라는 말은 여전히 어딘가 낯설다. 여름휴가라는 단어는 익숙하지만 아무것도 성취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일정표를 비워두는 용기, ‘잘 쉬는 것’을 목적 삼는 감각은 생각보다 쉽게 몸에 붙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나라 시민답게 우리는 늘 빠르게 달려왔다. ‘빨리빨리’는 생활 방식이자 미덕이 되었고 그 문화는 휴가에도 그대로 스며들었다. 쉬는 날조차 고효율로 계획해야 마음이 놓이고 몇 군데를 갔는지,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알차게 보냈는지로 휴가의 가치를 증명하려 드는 습관. 나는 그런 계획형 휴가에 익숙한 문화 안에서 살아왔고, 그래서 ‘바캉스다운 바캉스’를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큰 결심이 필요했다.

이번 여행은 발리의 세 번째 방문이었다. 처음도 아니고 어쩌면 그래서 더 확실히 비교할 수 있었다. 발리는 갈 때마다 늘 같은 방식으로 나를 쉬게 해주지 않는다. 대신 매번 다른 결로 내가 놓치고 살던 호흡을 되찾게 한다. 이상하게도 발리 땅을 밟는 순간부터 몸이 먼저 안다. “아, 여기서는 좀 내려놔도 되겠구나.” 그 감각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영혼이 정화되는 쉼에 가까웠다.

2025년 7–8월, 13일간의 동선은 사누르에서 시작해 울루와뚜를 거쳐 문둑을 지나 아메드로 이어졌다. 사누르는 시작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곳이었다. 해변의 공기는 과하게 달리지 않고 하루가 ‘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해도 되는 것’으로 채워진다는 걸 알려줬다. 그리고 사누르에서 나는 계획에 없던 장면 하나를 만났다.

어느 날 해변 쪽으로 걷다가 발리인들이 연을 띄우는 모습을 보게 됐다. 처음엔 그냥 누군가의 취미인가 했는데 곧 알게 됐다. 그게 ‘축제’에 가까운, 해마다 열리는 기간이라는 걸. 우리는 보통 축제라면 미리 찾아보고, 날짜를 맞추고, 동선을 끼워 넣는다. 그런데 사누르에서의 그것은 달랐다. 내가 찾아간 게 아니라 내가 걷다가 마주친 축제였다. 하늘에는 연들이 올라가 있었고 바닷바람은 연줄을 팽팽하게 당겼다. 사람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줄을 잡고 서로를 부르고, 웃고, 다시 뛰었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계획표 바깥에서 삶이 제 계절을 알고 스스로 축제를 열고 있다는 느낌. ‘쉬는 시간’이란 것도 사실은 이런 것일지 모르겠다. 내가 뭘 하겠다고 정하는 시간이 아니라, 일상이 우연처럼 건네주는 기쁨을 받아들이는 시간.

울루와뚜에서는 바다가 더 큰 소리로 말을 걸었다. 절벽 끝에서 부서지는 파도는 내가 쥐고 있던 긴장을 도려내듯 거칠었고, 그 거침 덕분에 오히려 마음 한쪽이 맑아졌다.

문둑은 공기를 바꾸는 구간이었다. 그곳에서는 폭포들을 찾아다녔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는 생각보다 강했고 그 강함이 오히려 마음을 씻어냈다. 폭포로 가는 길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열대의 식물들이 길 양옆에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잎의 크기와 색, 습기 머금은 광택이 풍경 자체를 새롭게 만들었다. ‘푸르다’는 말로는 부족한 초록들 사이를 걷다 보면 여행지의 아름다움이 꼭 전망대나 명소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저 이동하는 시간, 걸어가는 길,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에도 충분히 숨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아메드에서의 6일. 그곳에서 나는 진짜로 휴가를 보냈다.

아메드는 도시가 아니었다. 대신 하늘과 바다와 산이 하루를 나눠 맡았다. 새벽에는 아궁산이 맡았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시간,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바다 쪽으로 몸을 돌리면 먼 산이 먼저 희미한 윤곽을 드러냈다. 아궁산 일출은 ‘예쁘다’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빛이 산을 타고 내려오는 순간, 내가 안고 있던 피로가 설명 없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장면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말이 줄었다. 감탄보다 침묵이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낮에는 바다였다. 아메드의 바다는 “즐겨라”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그냥 여기 있어도 돼”라고 말하는 쪽이었다. 물빛이 과장되지 않고 시간도 재촉하지 않았다.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바다는 같은 얼굴로 곁에 있었다. 그 꾸준함이 좋았다.

해가 기울면 아메드의 하루는 다시 한 번 방향을 바꿨다. 일몰은 하늘이 붉게 타오르는 이벤트가 아니라 서서히 꺼지는 조명처럼 조용했다. 빛이 빠질수록 풍경은 더 단정해졌고 그 단정함이 마음을 안정시켰다. “오늘도 끝났구나”라는 단순한 사실이 이렇게 다정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밤이 되면, 마지막으로 하늘이 등장했다. 별과 달, 그리고 끝내 해와 함께 이어지는 하루의 순환. 아메드의 밤하늘은 내가 평소에 ‘하늘’이라고 부르던 것과 달랐다. 도시의 하늘은 배경이지만 아메드의 하늘은 주인공이었다. 별을 보며 생각이 커지기보다 오히려 작아졌다. 내 삶의 문제들이 사라졌다기보다 문제들이 놓일 자리가 바뀌었다. 꼭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오늘의 내가 짊어질 필요가 없는 것들이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돌아보면 그 13일 동안 나는 많은 곳을 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시간이 나를 어디로 데려갔느냐였다. 사누르에서 시작된 느린 호흡이 울루와뚜에서 한 번 씻겨 나가고 문둑의 폭포 소리와 열대의 초록을 지나, 아메드에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마지막 6일의 아메드에서 나는 비로소 ‘휴가’라는 말을 이해했다. 쉬는 건 멈추는 일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과정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 다시 빠른 리듬이 나를 부를 것이다. 해야 할 일들이 다시 줄을 서겠지. 그래도 이제는 안다. 속도와 효율의 습관이 휴가에서도 나를 몰아붙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발리는 갈 때마다 그 습관을 잠시 멈추게 하며 영혼이 정화되는 쉼을 내게 건넨다는 걸. 계획표 바깥에서 하늘로 올라가던 사누르의 연들, 문둑으로 향하던 길가의 열대 식물들, 아궁산의 새벽빛, 하루 끝의 바다, 별과 달이 흔들리던 밤. 그 기억은 내가 “다시 잘 쉬는 법”을 잊지 않게 해주는 작은 지도처럼 남아 있다.